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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이기는 생활

구세군서울지방본영 2020. 5. 22. 13:50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며

믿는 자마다 그 안에

증거를 갖게 됨을 믿는다.

-구세군교리 7조-

 

◉ 도입

지난 한 주간 평안히 지내셨는지요? 지난주에는 구원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오늘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죄에 대해 그리고 죄를 이기는 생활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질문

1. 죄란 무엇인가요?

2. 죄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요?

3. 우리가 죄를 이기고 살 수 있을까요?

◉ 전개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경험하게 되면 성경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생기게 됩니다. 마음속에 기도하려는 갈망도 생기게 됩니다. 이전에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달리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전도의 마음도 생기게 됩니다. 이런 현상들이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우리 속에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무척이나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번 과에서는 성서가 말하는 죄에 대한 죄에 대한 정의를 알아본 다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생활을 하다가 죄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어떻게 하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그 다음 죄와 싸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죄란 무엇인가?

우리말 국어사전에서 죄란 “도덕이나 종교·법률 등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훨씬 더 광범위 합니다. 즉 행위로 법이나 기준을 어길 때도 죄라고 하지만, 양심이나 마음으로도 범하는 행위를 죄로 보고 있습니다. 죄의 정의를 내려주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성서는 죄를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을까요?

1) 구약성서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들 중 흔히 사용되는 단어는 ‘하타’(ḥaṭṭāṯ), ‘아원’(‘ă·wōn), ‘페샤’(pesha)입니다.

① 하타

과녁을 빗나가거나 기준에 미달됨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사사기 20:16)에서 ‘틀림’에 해당되는 단어가 하타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정하신 과녁(말씀)을 맞추지 못하는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죄로서 하타를 가장 먼저 사용한 곳은 가인과 관련한 구절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나갔지만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심히 분노를 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가 너를 원하나 너는 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6절입니다.

여기서 죄라고 사용한 히브리어가 하타입니다. 가인의 제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과녁이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로서 하타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을 미치지 못할 경우를 죄라고 보는 것입니다.

② 아원

불법(iniquity) 또는 유죄, 죄, 범죄(guilty)로 번역합니다. 그 의미는 사악한 행위를 의미하고, 의도적, 의식적인 악을 나타내며, 행위의 성질, 또는 동기와 내용을 문제시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성서에서 죄를 아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곳의 예로 사무엘상 3:13을 들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특히 아원은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속죄물이 될 것을 예언하는 이사야 53:6의 예언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③ 페샤

허물, 죄과, 위반, 범죄(transgression) 혹은 거역, 반항(rebellion)으로 번역합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인간의 거역(revolt)이나 반역을 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열왕기상 12:19, 열왕기하 3:5, 잠언 28:21, 이사야 1:2, 호세아 8:1참조). 파샤는 여러 뜻으로 번역되고 있을지라도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본 개념은 ‘반역 또는 거역하는 것’(to rebel)입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열왕기상 12:19).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이사야 1:2).

2) 신약성서

신약에서는 대체로 사용하는 헬라어 죄라는 단어 ‘아디키아’(adikia)와 ‘하마르티아’(hamartia)입니다.

① 아디키아

행악, 불의, 불법(wrongdoing, uprighteousness)과 부정(injustice)을 뜻합니다. 즉 ‘아디키아’의 죄는 하나님의 기준을 위반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의도적인 인간의 선택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어 ‘아원’과 유사한 단어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관련해서(로마서 1:18), 돈과 관련해서(누가복음 16:9), 인간 육체의 각 지체와 관련해서(로마서 6:13), 행위와 관련해서(데살로니가전서 2:10)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로마서 1:18).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로마서 6:13).

② 하마르티아

구약 히브리어의 ‘하타’의 의미와 거의 흡사한 단어로 ‘표적을 맞히지 못함’을 뜻합니다. 신약에서 하마르티아는 특유한 신학적 의미로 사용되며, 이 단어는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죄에 대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로서 신약성경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약 227번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본래 뜻은 ‘표적을 빗나가는 것(missing the mark)’입니다. 복음서에서 이 단어가 사용될 때, 이 단어는 대부분 용서나 구원을 언급하는 문맥에서 발견됩니다. (참고 성경구절- 로마서 5:12; 고린도전서 15:3; 고린도후서 5:21; 야고보서 1:15; 베드로전서 2:22; 요한일서 1:7; 2:2; 요한계시록 1:5)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사도행전 2:38).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정의를 종합해 보면 죄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거룩함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감정이나 생각은 다 죄입니다. 이런 죄들은 사도 바울이 “내 안에 선한 것이 거하고 있지 아니한 줄을 내가 알고 있다(롬 7:18)”고 말한 것처럼, 인간의 악한 본성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죄의 종류

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

요한1서 3:4

②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

야고보서 4:17

③ 믿음에 따라 행하지 않은 것

로마서 14:23

④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요한복음 16:9

⑤ 모든 불의한 것들

요한1서 5:17

⑥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여러 악한 생각들

마가복음 7:21

4) 죄의 결과

① 하나님은 죄에 대한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롬 6:23).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므로 하나님은 죄에 대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형벌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② 성경에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죄에 대한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히브리서 9:27). 그리고 심판 이후에는 인간이 범한 죄의 죄로 인하여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한계시록 20:13).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요한계시록 20:13).

③ 예수님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들이 받게 될 영원한 형벌인 지옥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본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한 그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요한계시록 20:13~15).

 

2. 그리스도인으로써 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내 뜻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4:7, 8)

위 성경 구절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 회복되어야 하고, 절망하지 말고 일어서야 하는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한 생활을 살도록 부탁을 받은 군우들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에서 자유로워지고 거룩하게 살다가 실패했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죄를 이기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죄를 창조주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시인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시편 32:5)

죄가 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고 “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라며 애매한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불투명한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을 살펴보고 하나님 앞에 실수한 것이나 죄를 범한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다. 실수나 죄를 솔직하게 다 고백했다면 그 순간 고백한 죄는 다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같은 고백을 다시 하지 않도록 돌이켜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마음속에 확신이 차게 되고, 자연스럽게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3) 고백한 것은 용서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절)

그러므로 본인이 고백했으면 이제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가지 않으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를 그때그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제 죄가 해결되었으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멈추는 것은 소극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데서 나와서 새롭게 변화된 생활을 요구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적극적으로 죄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개인의 힘만으로 죄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탁을 드려야 할까요? 이 문제는 성장반에서 공부하겠지만,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삶 즉‘성령 충만’으로 해결이 됩니다. 내 속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되면 성령님의 능력으로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이기기 위한 성령 충만한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1) 우리 마음에 성령님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요한복음 7:37)고 하셨습니다. 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목마르면 오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속에 목마른 심정으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도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편 42:1) 라며 주님을 마음에 모시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2)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을 포기한다는 말은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심입니다. 현재 당장은 어려운 것 같지만, 이렇게 하면 결과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자신을 비운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축복이 가득 차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어서 성령님의 힘을 의지하여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2-24)

3)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너희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1:13).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구하는 것을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허락해 주심을 약속했습니다. 간절히 구한다는 말은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즉 기도로 성령님이 충만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구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구한 대로 채워주셨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믿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신 것을 믿은 것과 똑같이 약속을 믿고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마태복음 7:7)의 말씀은 분명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씀에 확신을 갖고 성령님께서 내 마음속에 충만하게 임하심을 가상이 아닌 사실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마음속에는 성령님이 충만하게 되고, 성령 충만할 때 이 세상 속에서 죄를 이기면서 승리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함께 나눌 문제:

1. 죄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요?

2. 죄를 지은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요?

3.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확신한 이후라도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을까요?

4.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실패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5. 우리가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인가요?

6. 죄를 고백함으로 용서받은 것은 소극적인 상태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여기에 머물지 말고 더 나아가 실패하지 않고 ( )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7.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리 속에 충만해야 할까요?

8.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자비와 축복이 내 인생에 가득하게 되려면 어떤 마음이 필요한요?

9. 우리가 성령 충만을 구한 다음에는 구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어디까지 가야하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