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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평신도 교육자료

구원을 지켜가기 위한 실천적 생활

by 구세군서울지방본영 2020. 5. 22.

 우리는 구원의 상태의 지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하는

믿음을 계속 가져야 함을 믿는다.

-구세군교리 9조-

 

◉ 도입

지난 두 과에 걸쳐서 우리 신앙의 궁극적 목적과 죄에서 분리하여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지켜나가는 원론적인 방법을 나눴습니다. 이번 과에서는 구원을 유지하면서 죄를 이길 수 있는 실천적 생활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질문

1. 구원에 대해 분명히 이해가 되는가요?

2. 000님은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가요?

3. 그리스도인으로서 죄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는가요?

 

◉ 전개

어떻게 죄와 분리하여 지속적으로 구원받은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원 받은 성령 충만한 상태를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한 체험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시작할 때 비로소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며(요한복음 14:21 참조), 이런 생활을 하나님 안에서 계속할 때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한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요한복음 15:5 참조). 그 결과는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요한복음 16:33 참조).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예배 도중에 또는 모임 가운데 한번 경험하고 끝나는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그 자체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 중에는 적극적인 요소와 소극적인 요소 양면이 있습니다. 전자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생활이라면, 후자는 성령 충만한 삶을 방해하는 세상의 시험과 죄로부터 분리하는 것입니다. 3과에서는 죄에서 분리에 대하여 그 정의와 대상과 결과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분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고린도후서 6:17,18).

사도요한은 세상의 임금(요한복음 16:11)이 주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한 1서 2:16)은 모두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죄악된 것이라고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이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며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5-17).

우리도 구원을 받기 전에는 이 세상의 거민이요, 이 세상의 노예였습니다(에베소서2:1-3). 하지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하나님의 독생자를 우리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골로새서 1:13)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는 아직도 ‘육신’이라는 사탄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어서 우리를 시시 때때로 세상과 타협하게 하며 범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죄가 내 속에 들어오는 즉시 성령님은 근심하시거나(에베소서 4:30), 소멸되시므로(데살로니가전서 5:19- 성령이 완전히 떠난다는 뜻이 아님) 성령님이 충만하지 못하게 되어 죄에 대하여 무기력하게 되고 구원의 기쁨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악을 향해서 우리가 더 사랑하고 더 가까이 간다면, 그 십자가에서 처참한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체험한 군우라면 누구라도 죄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며, 죄에 가까이 하는 것을 마치 고압전선을 맨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사시면서 항상 죄와 분리된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계셨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습니다(요한복음 17:14). 성령님도 우리에게 죄에서 분리된 생활을 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야고보서 4:4).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린도후서 6:17).

‘분리’라는 말은 세상과 접촉도 하지 말고 죄인들과 함께 있지도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계시며 식사도 같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죄를 범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죄인들을 회개시킬 목적으로 사랑도 하고, 병도 고쳐주고,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선행도 베푸셨습니다. 우리도 영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죄와 분리하는 생활을 하며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으로 주위의 영혼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죄를 짓지 못하게 되어 아쉬워하고 있습니까?

 

2. 무엇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가요?

첫째, 불신앙의 세계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매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라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린도후서 6:14-16).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은 불신앙인들과 상종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계속 영향력을 끼쳐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며,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2:8; 고린도후서 12:15 참조).

『회개에의 경종』을 저술한 죠셉 얼라인은 악영향을 끼치는 친구들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험 중에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것은 나쁜 친구를 사귀는 일이다.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중간에 깨어지고 얼마나 숱한 영혼들이 망했는가!”

둘째, 나쁜 습관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질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잠언 7:21-23).

향락, 도박, 술취함, 방탕한 생활 그밖에도 모든 어둠 가운데 행하는 나쁜 행동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셋째, 더러운 생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원래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의 거하는 장소로써 만들어진 것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린도전서 3:16)고 했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죄악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넷째, 모든 악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2).

우리 생활 가운데는 모든 사람들이 죄로 인정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비록 죄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일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우리 생활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2).

다음과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해 봄으로써 성경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옳고 그른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① 이것을 하면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까?(고린도전서 10:31)

② 이일은 성경의 가르침에 맞는 것일까?

③ 예수님이라면 이런 일을 하실까?

④ 이일을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했다고 사람들 앞에서 간증할 수 있을까?

⑤ 이 일은 나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까?

⑥ 내가 이 일을 할 때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

⑦ 내가 이 일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을까?

 

3. 결과: 죄와 분리 - 그리스도와 연합

우리는 소위 영문 밖의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향락과 속된 생활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기독교인들이 말하는 행복을 조금이라도 누려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요?

분리된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생명과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b).

우리에게 있는 축복은 곧 세상이 줄 수 없는 한없는 하나님의 평안(요한복음 14:27)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기쁨/ 베드로전서 1:8)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넘치는 것’(로마서 5:5)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에베소서 1:3)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고린도후서 5:1)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 4:8, 9), 심지어 죽음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소망 가운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와 세상과 사탄과 분리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 속에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적극적 생활인 것입니다.

000님도 이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경주하는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다음 찬송을 감사함으로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 함께 나눌 문제

1. 성령 충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요?

2. 성령 충만의 적극적인 요소와 소극적인 요소는 각각 무엇인가요?

3. 죄가 들어와 성령님이 근심하시거나 소멸되시므로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4.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면서 무엇과 분리된 생활을 하셨나요?

5.우리가 분리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6. 분리된 생활을 하는 군우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약속하셨나요?

7. 우리가“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 4:8,9)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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